◈ ♬ 부모 앞의 편지/조 오비 ♬ ◈주린 배를 잡고산을 넘어 학교 가던 날, 배 껍질이 붙어 앞이 보일 때마다 저의 부모 고향이 무척 야속스러웠다긴 겨울의 북쪽 풍한 눈의 칼바람을 들판을 건너고 서럽게 내리던 눈이 입술을 다물 높이다 창고에 제대로 밀어넣을 때마다 끼니를 때운 밤이 싫어했다손 본 감나무 가지에 놀러 온 까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울면 양손 가득 무지개 빵을 사서 멀리서 귀한 손님이 올까 동그 밖으로 긴 목을 자르다 가지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 있었는데···가난 구제는 저도 못한다는데, 그 시절, 입가에 항상 숯 검정을 달고 논 두렁 밭에 이삭 줍기를 할 때도 특히 흰쌀밥이 스며드는 만큼 먹고 싶었다.보리 쌀과 백미를 9대 1의 비율로 섞어 촛불의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 날이 저물면, 홀가분한 방에 모인 8명 가족이 식사 자리를 잡아 흰 밥 한끼의 식사를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면 순 보리밥이라도 한 입 더먹으려고 바닥이 노출된 솥 뚜껑을 잡고 얼마나 올렸는지!어린 아이들의 밥을 무시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먹던 밥을 그리고 아닌가 그리고 방을 나오기 일쑤였지만 이런 사정을 알 수 없는 우리는 아버지가 남긴 밥을 먼저 잡으려고 고양이 쟈노메처럼 서로를 때리고 형들께 무척 혼 났던 기억이 않나!!!먹고 가는 게 너무 힘들었던 시절 가난을 등지고 오십리 백리를 오가며 아이의 뒷바라지 해온 부모를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고 자식의 도리가 훨씬 멀지만 그..고생의 은혜가 다 전해지는 전에 힘들고 피곤한 시절뿐 표정으로 그대로 남아 따끔따끔한 불효 자식의 애련한 마음을 한)에서도 전부 갚지 못하고 그저 목이 메어요 살아 귀천도 가난도 괴로워여정을 좀 더 보태어 줄 수 있었으면 좋은 것만을 품고 아름다운 모두 나뉘지 않았던 시절 열심히 살려고 죽을 힘을 다하고 살려고